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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파커 별세, 그의 일대기

by 미스터리바이브 2020. 8. 1.

 

 1978년 스릴러 영화인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의 모든 scene을 4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팬들이 많을 것입니다.

 

 1977년 빌리 헤이스의 non fiction을 올리버 스톤 감독이 재구성하여 만든 이 영화는 터키에 머무르던 미국 청년이 억울한 누명을 써 옥살이를 하다 탈출하는 과정을 긴장감 넘치게 연출하여 국내에서도 꽤 흥행 한 영화였습니다. 영화에 삽입되었던 ost들도 여전히 기억에 선명할 정도로 많은 화제가 됐었죠. 

 

앨런파커 별세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영화를 비롯해 ‘페임’, ‘에비타’,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등 영화 음악에 있어 엄청난 재능을 보이며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킨 영국의 영화감독 앨런파커가 현지시간으로 7월 31일 별세하였습니다.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앨런파커의 유족들은 "그는 오랜 질환과의 싸움 끝에 숨을 거뒀다"고 말하였습니다.

 

 

 

앨런파커 감독의 일대기


 194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앨런파커는 광고 copywriter로 그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후에 광고 연출 등의 일을 하며 1974년 TV 영화 ‘피난민들’로 영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에게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는데요, 후에 앨런파커는 영국 아카데미상을 7개나 수상하였고, 2013년에는 그가 영화계에 이바지한 평생 공로를 인정받아 협회상(The Academy Fellowship)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로 아카데미상 2부문을 수상하는 등 10차례나 수상했고 Golden glove도 10 차례나 수상했지만 정작 중요한 감독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앨런파커는 스타를 꿈꾸는 청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FAME’과 에비타 페론의 극적인 삶을 그린 ‘EVITA’,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등 음악영화들로 유명합니다.

kkk

 

 1964년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가 흑인 인권 운동가 3명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을 다룬 ‘미시시피 버닝’ 등 다소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는 것들을 다루면서 그의 소신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주변인들이 기억하는 앨런파커

 

 영화 'EVITA’의 음악을 만든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본인의 트위터에 “ 앨런파커는 뮤지컬이란 장르를 스크린에 옮기는 방법을 진정으로 이해한 몇 안되는 감독 중 한 명이었다”고 글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를 앨런 마샬과 함께 제작했던 데이비드 푸트넘은 “앨런파커는 나의 가장 오래 된 친구였다”며 “난 항상 그의 재능에 감탄했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대영제국 감독 조합 창립 멤버였으며 영국 영화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기도 한 경력이 있습니다.

영국 영화 연구소, 영국 아카데미 위원회와 미국 아카데미 위원회 등도 앨런파커 별세에 모두 조의를 표했습니다.

 영화 ‘웰빌 가는 길’에서 앨런파커와 함께 작업했던 배우 존 쿠삭은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 중 한명”이었다고 애도하며 본인의 뜻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

 

앨런파커의 마지막 연출작은 2003년 케빈 스페이시와 케이트 윈슬렛이 공연한 ‘데이비드 게일’입니다.

앨런파커 유족 대변인에 의하면 은퇴 후 그는 그림에 취미가 생겨 그림 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앨런파커의 마지막 작품 '데이비드 게일'

 

 2005년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신랄하게 돌아본 회고록 ‘윌 라이트 앤 디렉트 포 푸드'를 출간하기도 하였으며, 2018년에는 영국 영화 연구소인 아카이브에 그가 살면서 쌓아온 방대한 각본과 작업 기록 등을 기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작업 노하우는 오늘날 감독을 꿈꾸는 젊은이들과 후대 영화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앨런파커 별세를 추모하며 포스팅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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